예배가 드리는 건강약

    September 5, 2010

    우리가 흔히 즐겁게 웃거나 신나 할 때 우리의 몸에서는 ‘엔드로핀’이 나오지요.
    엔드로핀이 면역성을 가지고 있고 우리 몸에 좋다는 것은 이미 아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그 보다 무려 5,000배나 강력한 호르몬이 있는데, 그 이름은 바로 ‘다이도르핀’입니다.
    ‘다이도르핀’은 우리의 삶에서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감동을 받았을 때 우리 몸에 생성되는 ‘감동 호르몬’입니다.
    이와 반대로 ‘아드레날린’이라는 부신(副腎) 호르몬은 불안, 두려움, 불쾌감이나 미움 같은 감정이 우리를 사로잡을 때 생성됩니다. 이 아드레날린은 엄청난 에너지를 방출하는데 이를 다 처리하지 못하면 이것이 몸 속에서 막대한 양의 산소를 잡아 먹고 급기야는 신경계를 교란시켜 각종 통증은 물론 병을 유발시키는 일명 ‘악마의 호르몬’이라고까지 불리 울 정도입니다.
    그런데, 연구에 의하면 우리 인간은 감동, 미움, 불쾌감과 같은 감정들도 선택할 수 있다고 합니다. 생각을 바꾸는 것이 곧 선택이겠지요. 작은 것에 감사하고, 주어진 것에 만족하고, 오늘도 나에게 살아있는 하루가 있다는 것에 행복할 수만 있다면… 만들어진 것보다 주어진 것에 감동할 수 있다면… 보석보다 풀잎에 맺힌 물방울에 감동할 수 있다면… 무엇보다도 나를 끔찍이도 사랑하시는 우리 주님이 내 편인 것을 알고 당당히 살아가는 그 인생은 참으로 아름다울 것입니다.
    왜냐면 늘 ‘감동 호르몬’이 흘러 넘치기 때문입니다.
    오늘도 여러분, 감동이 넘치는 예배를 드리기로 작정하시기를 바랍니다.

    교회 사랑 십계명 (엡 4:15)

    September 5, 2010

    1 교회 사랑은 “경외함의 사랑”을 포함하고 있음을 기억하십시오.
    사랑은 따뜻하고 편안한 것이지만 동시에 사랑은 “경외함”을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경외(敬畏)란 “경건한 두려움”을 말하는데, 사랑과 경건한 두려움은 항상 공존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영혼이 쉬는 안식처이기에 편하기도 하여야 하지만, 항상 조심스러움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2 성도들 간에 항상 좀 더 친할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경우도 있습니다. 이런 현실을 인정하시되 그렇다고 해서 무시하거나 배타 하지는 마십시오.
    인간관계를 맺다 보면 가까운 사람, 가깝지 못한 사람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주님의 제자 중에서도 친소관계가 있었습니다. 수제자 베드로를 비롯해서 3명의 애제자(愛弟子), 12명의 제자, 전도대 70인(눅 10장), 120문도(행 1장), 500여 형제(고전 15장)… 이처럼 친소(親疏) 관계는 현실로 인정하시되 가장 주의 해야 할 것은 편애하는 모습을 서로 보여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편애란 사람의 인격과 그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무시하고 배타하는 태도를 말합니다.

    3 문제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되십시오.
    시험 문제에는 해답이 있지만 교회 문제에는 “해답”보다는 “긍정적 해석”이 더 중요합니다. 어떤 일이라도 문제로 보면 문제가 되지만 기회로 보면 발전과 성장의 계기가 됩니다. 인생은 그래서 해석입니다. 문제 자체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지게 됩니다. 교회 생활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항상 “긍정적 해석”을 하십시오.

    4 남의 변화를 요구하기 전에 내가 먼저 변하기를 힘쓰십시오.
    많은 사람들이 자기는 움직이지 않고 남만을 움직이려고 하기에 문제 해결이 어려워집니다. 있는 자는 없는 자에게 조용하라고 하고, 없는 자는 있는 자에게 마음을 고치라는 태도를 가지기 쉽습니다. 자신의 변화를 통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 문제를 해결하는 참된 방법과 능력입니다.

    5 부정적인 것에 너무 집착하지 마십시오.
    소망을 죽이는 아래와 같은 네 명의 살인자가 있습니다. 이 살인 수법에 걸려들지 마십 시오. 오히려 긍정적인 면에 마음의 초점을 맞추십시오.
    1) 우리의 문제는 무엇인가?
    2) 우리의 부족한 것은 무엇인가?
    3) 우리의 걱정거리는 무엇인가?
    4) 우리의 약점과 결점을 무엇인가?

    오이코스에 대하여

    September 5, 2010

    저는 오늘 오이코스에 대하여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 성도님들 가운데는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러 왔는데 왜 목사님은 계속 오이코스와 이를 인도하는 오이코스 목자에 대한 이야기만할까?” 또는 “나는 교회에 와서 위로의 말씀을 듣고 축복을 받기를 원하는데 우리 목사님은 왜 오이코스에 대해서만 말씀하시나?” 하는 의구심을 풀어드리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들에게 왜 주셨을까요? 간단하지요,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하도록 주셨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통하여 주님께서 주신 지상명령을 우리는 잘 알고 있고, 그 지상명령을 수행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이 바로 오이코스인 것입니다. 이 오이코스야 말로 여러분이 주님의 지상명령을 수행할 수 있는 가장 효율적인 방편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의 일을 할 때 참된 위로가 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행할 때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마고 약속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일이 무엇이며 성경을 통하여 나타나있는 하나님의 가장 높으신 뜻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이 바로 주님의 지상명령이 아니겠습니까? 바로 이 주님의 지상명령을 수행하는 구체적인 방안이 바로 오이코스인 것입니다.
    저는 언제나 성도님들이 원하는 것과 필요한 것 사이에서 갈등을 느낍니다.
    그러나 저는 여러분의 목회자로서 여러분이 원하는 것을 제공하는 목자가 아니라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을 제공하는 목자가 되기를 원합니다.